성북동 글방 희영수

0722 목 / 초코멸망 / 긴개 본문

2021-2023 긴개

0722 목 / 초코멸망 / 긴개

긴개 2021. 7. 22. 23:59


초콜릿 사망자가 벌써 67만 명에 다다랐다. 처음엔 초코G바를 먹고 죽은 아이 때문에 G사의 제조공정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국민청원이니 회장 사퇴니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 뒤에 편의점 초코우유, 카페의 카페모카, 디저트 전문점의 초코케이크 등 초콜릿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사망한 사람들이 부지불식중에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동안 전세계 곳곳의 카카오 원산지마다 UN 산하의 조사단이 파견되었지만 이렇다 할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초콜릿을 가공하고 원료로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회사들이 막대한 합의금과 벌금을 물며 연쇄파산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초콜릿 섭취는 전세계멸망을 믿는 사이비 광신도들 사이에서 단체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신도 중에서 초콜릿을 먹고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세계가 멸망하는 이 멋진 순간에 나도 역시 합류하겠다며 뛰어들었으나 그저 입가에 달콤한 여운이 남을 뿐이었다. 어린 아이들과 코코아를 즐기던 호호백발 할머니들도 맥없이 쓰러지는 와중에 오로지 사이비 신도들만이 초콜릿을 즐길 수 있었다. 초콜릿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자격을 부여하는 신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더이상 생산되지 않는 초콜릿을 찾아 신도들은 불타버린 카카오 원산지로 모여들었다. 무덤과 소각장을 넘고 넘어 카카오 뿌리가 묻혀있는 땅 위에 모여든 뒤 잿더미가 쓸려내려가도록 엄청난 양의 물을 부었다. 잿물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종류의 싹이 돋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