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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7 토 / 순이지의 '그럴싸한 개소리'에 납득하기 / 긴개 본문
[SOON.EASY]
그럴싸한 개소리 PLAUSIBLE BULLSHIT
2021.01.21 - 2021.02.27
아이다호 IDAHO
'전시된 박스 조형물들은 그들이 재현하려 했던 대상의 무게나 속성, 기능에는 관심이 없다. 대상의 겉모습만 1차원적으로 핥은 채 놓여있을 뿐이다. 관객들은 본질적으론 닮은 점이 거의 없는 재현된 박스를 본래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개소리여도 겉모습만 꾸며놓으면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듣는 모양이다.'
(전시장에 붙어있는 소개글에서)
밑도 끝도 없이 툴툴 대는 사람이 귀엽다.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가동되는 공장의 기계처럼 투덜이의 주둥이는 쉴 새가 없다. 시큰둥하게 구겨진 채로 중얼중얼 외는 염불 속에 뒤틀린 욕망의 유머가 숨어있다. 떨어지는 벚꽃잎 아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굳이굳이 끼어들어 미간을 찌푸린, 그런 웃기는 사람을 보면 뒤통수를 세게 때린 뒤 꼭 안아주고 싶다. 안기기 싫어 버둥거리더라도.
나는 항상 그런 캐릭터를 사랑해왔다. 마크 트웨인, 플래너리 오코너, 찰스 부코스키, 셜록 홈즈, 장기하,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지, 데드풀, 하워드, 그리고 순이지... 순이지 작가가 사랑하는 건 도대체 뭘까. 그의 그림과 종이 조각은 세상 모든 이슈에 대해 일일이 성실하고 섬세하게 궁시렁대고 있다. 이렇게 못마땅한 것들이 모여 음울하고도 절망적인, 그러나 아직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웃을 수 있는 농담을 꼬박꼬박 이어가고 있다. 날카로운 농담이 먹히려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해야 한다. 과녁의 언저리만 몇 번 두드리다 나가 떨어지면 재미도 없고 화만 돋운다. 원샷원킬!
태어나지 마세요, 가능하다면. 되도록 멍청하지 마세요. 감히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유난 떨지 말라고 유난 좀 떨지 마세요. 슬픔도 거짓이구요, 사랑도 거짓입니다. 옳은 행동을 하는 게 항상 최선은 아니죠. 그게 그거예요. 당신은 여기까지죠. 결국 우린 다 죽는다니까요... and more and more and······.
순이지 작가는 종이 신문이 힘을 잃으며 정치 풍자 만화가 사라진 세대의 온라인 기반 풍자 만화가로도 볼 수 있다. 만화가라는 명명과 작업의 차원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한 컷 안에서 모든 상황이 설명되거나 여러 컷으로 이어지는 시공간의 이동을 활용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의 만화가 보여준 표현방식과 가장 부합한다. 게다가 순이지의 강점은 도치나 역설 등을 활용한 말장난이다. 순이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문구나 단어들을 우물우물 씹은 뒤 어감은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말로 뱉어낸다. 짧고 함축적인 문장은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어 한 눈에 읽힌다. 글은 그림의 일부가 되어 삐뚤삐뚤 그어져 있거나 글 자체로 존재한다. 내가 아끼는 현대의 풍자 만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박스 판에 그린 이미지를 조립해 두툼한 종이 조각으로 만드는 과정은 어린이가 조립 로봇을 갖고 노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굉장히 수고스러운 놀이를 이어가는 그의 동기는 무엇일까. 외면하고 싶어도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세계의 어긋난 틈이 밤하늘 달처럼 그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 틈에서 새어나온 비명들이 귓가에 모기처럼 윙윙 울려대는 통에 그도 어쩔 수 없이 동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순이지 작가의 개인 전시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돈패닉에서 그의 스티커를 발견하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포스터를 구매한 뒤로는 SNS 게시물에 하트를 눌러주는 정도의 응원만 지속해왔다가 이제야 종이 조각 작업의 실물을 볼 기회가 생겼다. 지금까지 아이다호에서 본 전시 중 공간을 가장 구석구석 알차게 채워놓은 전시였다. 이미 SNS를 통해 본 적이 있는 조각 이미지도 입체로 다시 보려니 새삼 설렜다. 종이 조각들은 무언가를 얼핏 흉내내고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카멜레온처럼 어설프게. 자세히 들여다보면 쓰여있는 글귀와 이미지는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다. 조각들은 잔뜩 술에 취해놓고도 멀쩡한 척하는 사람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 나이키인척, 맥북인척, 반스인척, 쓰레기통인척, 일리커피인척, 머니건인척 ······. 기대했던 것과 다른 실제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배배 꼬인 농담이 곳곳에 상쾌하게 널려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꾸만 헛웃음이 난다. 이런 재치가 솟아나는 샘을 빼앗아 독차지하고 싶다.
전시 마지막 날까지도 종이 조각들은 아슬아슬하게 3D로 존재하고 있었다. 눈사람을 부수는 익명의 폭력들이 여기에도 다녀가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아마 이 조각들은 전시장에서 작업실로, 작업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며 점점 쭈글쭈글 물러터질 것이다. 예수쟁이의 종말 팻말처럼 목 아프게 유한한 삶을 경고했던 순이지의 조각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어 있을까. 농담이 충분히 제 몫을 다한 다음 작가가 바라보는 가운데 서서히 납작해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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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냉소를 담은 유머, 유머를 담은 냉소로 세상을 그리는 '순이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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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음울한 유머 감각의 주인공, '순이지' 작가의 그럴싸한 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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