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아 살아보니 어떠하냐 80 세월의 회한을 종이 위에 옮기기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지. 손짓발짓을 동원하더라도 이제껏 들여다 본 광활하고도 놀라운 세상과 내가 공명한 작은 조각을 포도 씨만큼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살 날이 더 주어진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테지. 80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국민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이런 느낌이었지. 중년을 지날 무렵부터는 온몸의 가죽이 녹아내린 장판처럼 겹겹이 골을 만들었고, 나는 그 껍데기 속에 독방을 배정받은 죄수처럼 갇혀 세상의 소리와 향기, 빛과 점점 멀어졌다. 그대신 이 안에서 작은 방을 만들었다. 이 아늑한 곳에 머물며 하는 일이라곤 그저 과거를 비디오처럼 끝없이 되돌려보는 것뿐이었다. 그 속에는 너희에게 머리 숙여 사죄해야 할 순간들이 빗살처럼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특히 첫째가 고생이 많았다. 장남으로 그동안 부모를 잘 챙겨주어 고맙다. 내 뒤를 이어 기업을 잘 운영하고 재산도 남매끼리 잘 나눌거라 믿는다. 동생들도 첫째를 잘 따라 살도록 해라. 잘 있거라.
는 아래 글의 일러스트에 쓰일 유서입니다. 손으로 옮겨 쓸 예정이에요. 어디서부터 애프터메일링서비스 직원의 글이 되어버린걸까요!
< 전송 오류 > 고객이 맡긴 유서를 유족들에게 대신 전달해주는 애프터메일링서비스 직원의 기업 비밀 폭로가 오늘 모든 뉴스의 메인으로 보도되고 있다. 실물 유서를 저장해 둔 창고에 누수가 생겨 직원들이 일부 손상된 유서의 일부분을 멋대로 채워넣었다는 사실을 숨겨왔다는 것이다. 한창 흥미롭게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방금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둘째 자녀가 총기를 소지한 채 애프터메일링서비스 본사 1층에 나타났다는 속보가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