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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글방 희영수
0905 월 / 초심은 우주배경복사처럼 / 긴개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고 해서 미술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 미술대학을 졸업해놓고 미술학원에서 배운 대로 그리는 나를 보니 알겠다. 학원에서 배운 입시 미술 기본기는 대학에서 배운 수많은 이론보다 깊은 곳에 들러붙은 뒤 흡연자 폐 속의 타르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어젯밤 간만에 파레트를 꺼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입시 미술학원에 등록하며 샀던 이 낡은 수채 파레트는 그때의 붓 세트와 함께 아직까지도 종종 책상 위에 오른다. 며칠 전 본 오리를 그리고 싶었다. 맑은 날 오리가 노니는 물가는 반짝이고 시원했다. 당시의 사진을 참고해 스케치를 하고 수채 물감을 풀어 색을 칠했다. 한참 그려놓고 보니 알겠다. 이건 머리가 아닌 손의 기억으로 그린 그림이다. 수고를 덜고 그려 발전이 없는 그림. 길가에 세워놓은 트..
2021-2023 긴개
2022. 9. 5. 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