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글방 희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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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3 긴개

0801 일 / 애완굼벵이 / 긴개

긴개 2021. 8. 1. 23:57


애완동물 키우시나요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굼벵이를 키우는 게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단지 그 존재를 밝히고 나면 예전처럼 활용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일 뿐이다. 굼벵이는 키우기 쉽고 조용하기 때문에 베란다 하나로도 충분한 양을 얻을 수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쫓고 싶을 때나 층간소음 피해자가 가해자를 쫓아내고 싶을 때 나에게 연락이 온다. 그러면 의뢰인의 세입자나 가해자의 집 안 쪽에 굼벵이를 며칠 간 계속 투입해준다. 특수청소용역 업체 직원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그러면 더 손 쓰지 않아도 흉흉한 상상에 괴로워진 사람들이 이사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까봐 자신이 상상한 것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로.

혹은 자신이 살해한 시체의 사망시간을 조작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굼벵이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굼벵이의 종류와 수에 따라 사망 시간이 다르게 측정되다보니 역시 효자 상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도 있다. 그렇게 시체 옆에 머물던 굼벵이들을 조용히 일정량 수거한 뒤 갈아서 파스타 소스를 만든다. 한 해 동안 가장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거나 무례하게 굴었던 이들에게 감사파티를 열고 파스타를 대접한다. 풍부한 단백질이 들어간 소스는 매번 호평일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