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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P 14회. 생태예술 단체 전시 <미증유 자연 The Unprecedented Nature. 24.10.26-11.8 본문
PTP 14회. 생태예술 단체 전시 <미증유 자연 The Unprecedented Nature. 24.10.26-11.8
긴개 2024. 11. 10. 16:57
길위의인문학 도움을 받은 제14회
post-tree project
: 생태예술 단체 전시
10월 26일 토요일 - 11월 8일 금요일
2주 간의 전시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미증유 자연 The Unprecedented Nature>
서문
자연과 상호존중하는 관계를 능동적으로 맺은 경험이 있던가. 혹은 그 가치에 걸맞게 자연을 정의내려 왔던가.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post-tree project>를 시작했고, 그 결과를 나누는 장으로 《미증유 자연》을 준비했다. 그동안 멤버들은 숲 속으로, 책 속으로, 이야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숲에서 무릎을 꿇고 땅에 눈을 갖다대면 태어나 처음 보는 미시적 생태와 맞닥뜨렸다. 손가락 끝으로 올괴불나무 잎 뒷면을 만지면 아기의 귀처럼 보드라운 털을 느낄 수 있었다. 냄새가 남다른 곤충과 열매가 있었다. 물가에서만 자라는 풀이 있었다. 삶의 배경으로 격하시켰던 자연과 오감으로 맞닿는 순간 비로소 우리들은 깊게 잠들었던 움벨트를 깨워냈다. 움벨트Umwelt는 생물학자들의 개념으로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1 그것은 이제껏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으며 감각을 깨우기만 하면 언제든 되찾을 수 있도록 코와 손, 귀, 눈, 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간판과 로고, 상품, 가격표로 가득한 세상에서 보잘것 없는 존재로 밀려나있던 자연을 근경으로, 코와 손, 귀, 눈, 혀 밑으로 불러오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 자연과 관계맺기의 첫 단계이다. 팀 잉골드의 『조응』과 유기쁨의 『애니미즘과 현대 사회』는 이 과정의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관찰과 사유를 잇는 격주 간의 대화는 자연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가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두꺼운 장작이었다.
1『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월북, 2023, p.35
《미증유 자연 The Unprecedented Nature》은 이제껏 있어 본 적 없는, 그래서 도래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애니미즘적 의례이자 생태예술 전시이다. 참여 작가는 전문 작가와 비전공자, 아마추어 등으로 학문적 배경과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다양하다. 또한 환경, 생태라는 주제에 관심 없던 멤버들이 여럿이라는 점에서 개인적 관심사 역시 천차만별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 《미증유 자연 The Unprecedented Nature》의 핵심 장르를 생태예술로 분류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융희2가 생태 예술의 지향점으로 지목했던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지속가능성과 자기실현'에 대해 공통의 의견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후위기와 생태다양성이 수많은 갤러리 안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견 아마추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번 작업들이 북적이는 생태예술의 장에서 소임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확장가능성과 실천적 태도일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반년간 멤버들은 정기 모임 시간 외에도 생태를 탐방하고 관찰하고 기록하며 외부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시를 위해 작업을 한 시간보다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 보낸 시간이 더 길 것이다. 자연과 관계맺기라는 목적과 관찰, 연구, 창작이라는 수단을 구분해 이해하고 생태윤리적 태도를 지향하되, 엄격하고 까다롭기보다는 유머를 겸비한 지속가능한 자세를 취하려 했다. 또한 이번 전시가 일회성 생태쇼가 되지 않도록 전시의 관람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다시 나누며 생태예술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2김융희. (2010). 생태예술의 지형그리기: 대지예술, 환경예술, 자연예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11(5), p.87.
최근 한국 곳곳에 러브버그로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가 대발생하자 시민들은 각 지자체에 화학적, 물리적 방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생명 한 종만을 겨냥한 방제가 불가능할 뿐더러 해당 문제 제기의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는 과학적, 생태적 답변에 따라 공존의 가치와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다정은 러브버그를 위한 단두대를 설치했다. <러브 다이, 뷰>에서는 차례를 기다리며 단두대 뒤로 줄지어 선 러브버그들과 이미 희생당한 러브버그들이 남긴 유언이 혼재하는 광경을 연출한다. 복슬복슬한 털과 커다란 눈망울로 모에화된 러브버그가 주는 친근함과 가차 없이 떨어질 순간을 기다리는 단두대의 섬뜩함이 대비되며 시각적 호오에 따라 존재의 생명권을 좌지우지하려는 잔인함과 무지함에 의의를 제기한다.
김지흔은 <2084 성북구: 이종과의 회의 보고서>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사회를 상정하고 있어서는 안될, 그러나 도래할 법한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자처한다. 또한 그는 전시장 앞의 인도에서 인간 종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퍼포먼스 <회의합시다>를 선보인다. 김지흔이 극복하려는 것은 한 종으로 태어난 신체가 갖는 필연적인 움벨트의 한계이다. 식물과 곤충과 그 너머의 자연과 소통을 갈라놓는 대상은 다름아닌 자신의 감각과 자아이다. 몸짓과 마음짓으로 불가능한 상대와 이어지고자 하는 이 퍼포먼스에서 김지흔이 무엇을 새롭게 깨닫는지 관람객들이 함께 짚어나가길 바란다.
박주영은 나무와 몸을 맞춘 순간에서 피어난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고 이를 나무에게 전한다. 나무의 몸으로부터 얻은 종이를 인간의 이야기를 담는 매체로 써왔던 인류가 그 반대의 상황에 처할 순 없을 지 의문을 갖는다. 들리지 않는 나무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가 자아내는 것은 이야기의 새로운 장이다. <무릎을 꿇고 땅에 납작이 엎드려 고개를 수그리고>에서 나무 하나와 인간 하나가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루페를 제안하는 박주영은 상이한 존재 사이를 연결하는 가능성으로써의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같아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고유한 존재들이 가장 먼저 나누어야 할 것은,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나무를 껴안고 그 사이를 걷는다. 잎사귀가 나부끼는 풀숲 너머에 베어지지 않은 채 생존한 나무들이 있다. 초록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넘실거리고 남자는 여전히 어딘가를 향하고 또 헤맨다. 이수정은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로 향했다. 서귀포시 독자봉 숲, 영주산 숲, 본지오름 숲, 이승악 숲, 제주시 문도지오름 숲을 연기하는 사람 남경우와 걷고, 때로는 멈춰서 바라보았다. 인간과 자연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방법에 그만의 해답을 찾기 위해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편집했다. <BEAM: 살아있는 나무>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일견 정적인듯 하지만 끊임없이 생동하고 있다. 그는 말없이 전한다. 동일한 숲을 걸어도 저마다의 감각이 수집하는 조각이 상이함을, 그러나 나누고자 하는 궁극적 순간은 때때로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이유진은 관찰의 여정을 드로잉과 오브제로 번역했다. <위대하게 작아지기>에서는 프로젝트 기간 내내 이어진 노동에 가까울 정도로 성실하고 꾸준한 관찰을 색과 선을 갖춘 형태로 수집해 여러 겹을 쌓았다. <뿌리>는 그가 애착을 갖던 은행나무를 통해 자연과의 연결 가능성을 넓혀가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두고 온 마음>에는 언젠가 마주한 비둘기의 눈빛의 무게가 담겨 있다. 비둘기가 앉은 신문 더미는 <불을 닮은 은행나무에게>이다. 관객은 비둘기를 들어 올려 신문을 한 편씩 가져갈 수 있다. 비둘기의 무게를 가늠하며 신문을 펼치면 이유진이 은행나무로부터 얻은 생태 감각이 콜라주로 구현된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소망탑>에 쌓아올려진 채집물들에는 그의 일부로서 흡수되고자 하는 갈망, 그로부터 새로운 층위의 생태적 에너지를 얻길 바라는 갈망 등이 혼재되어 있다.
정원사가 예술혼을 다해 깎은 관목 같기도 하고 너무 느리게 걷는 탓에 몸에 이끼가 생겼다는 나무늘보 같기도 하다. 이재혁의 <모스쿠스테리움 암불로스>는 식물과 동물의 유사성에 착안해 생성된 새로운 존재이다. 전에 없던 형태와 습성을 갖고 세상에 나타난 이끼동물은 이분법적 분류에 익숙한 우리에게 당혹감과 경계심을 준다. 이끼동물이 무엇을 섭취하고 무엇을 내보내는지, 혹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꺼리는지 상상하는 동안 우리는 낯선 존재와 거리를 좁히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궁리하게 된다. 이는 이미 익숙하다고 착각해 쉽게 관계의 선을 넘게 되는 일상적 존재와는 주고 받지 않던 관계맺음이다. 이끼동물의 등장은 종 간 소통과 거리두기 등의 시작점을 재설정하는 계기가 된다.
안정민은 반찬의 재료로 여기던 애호박의 본체에 주목했다. 애호박의 덩굴손이 뻗어나가는 힘과 출처 모를 의지, 생명력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덩굴에게 새로운 시공간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선물한다. 그가 제작한 <유비쿼터스 애호박>은 인스타그램 AR 필터이다. 필터 씌운 카메라로 눈가를 비추면 잎이 피어나고 입에서는 애호박이 쏟아진다. 시선 닿는 곳에서부터 덩굴이 자라나도록 영상을 촬영할 수도 있다. 좁은 텃밭에 뿌리내리고 넓은 도로에 앞길을 가로막힌 덩굴이 가상세계에서 널리 퍼져나가고,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 열매를 맺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애호박에게 새로운 아이덴티티와 가능성을 부여한다.
임유정은 나무가 연상시키는 기억을 마주했다. <현상: Trees Preserving Lost Memories>에서 그는 상실에 머무르기를 시도한다. 나무는 이 과정의 협력자로서 임유정 자신의 마음 들여다보기를 격려하고 기다려주고 또 들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인류의 오랜 숭배 대상이자 애니미즘적 공동체 의례의 주요한 주체였던 나무의 역할을 현대 사회의 개인이 다시금 되살려낸 것이자 잊고 있던 나무와의 관계맺기를 지속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지이기도 하다. 한 나무가 살아있는 동안 적어도 한 인간이 그에게 머물기를 원한다면, 반대로 한 인간도 한 나무의 보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이정은 비인간의 시선을 상상하며 포착한 자연의 혼돈과 질서, 에너지를 <생태 수프- 숲에서 숲을 잃어버렸네 강에서 강을 되찾았다네 검은콩은 사람이었고 마지막 순간 나무에서 벗어날 수 없었네>에 담았다.
지문열은 텍스트 더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구분하고 또 녹아들었다.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관조하는 그는 자연과 자신의 거리를 좁혀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텍스트를 상상하고, 텍스트를 모으고, 텍스트를 엮었다. 지문열은 사후에 나무가 되는 방법을 상상하고 또 나무의 인상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나무에 깃드는 것, 나무가 베어지는 상황, 나무와 인류의 역사 등을 다룬 텍스트를 통해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 고찰만을 남겨두려 한다. 그가 함께 읽고자 한 텍스트는 아래와 같다.
-카를 고틀로프 셸레, 문항심 역, 『산책하는 법 : 걸으면서 되찾는 나에 대한 감각』, 유유, 2024
-홍태식, 『도시나무 오디세이 : Storytelling of Urban Trees』, 디자인포스트, 2024
-도리스 라우데르트, 『나무신화 : 나무로 본 유럽 민속의 기원과 효능』 이선 역, 수류산방, 2021
-이유리, 「빨간 열매」, 『브로콜리 펀치』, 문학과지성사, 2021
-김기흥·주윤정, <인간과 동물의 조응(correspondence): 팀 잉골드의 인간너머의 인류학>, ≪과학기술학연구≫ 22(2), (한국과학기술학회, 2022), 184-193쪽
-박효민·천명선, <팀 잉골드(Tim Ingold)와의 인터뷰>, ≪과학기술학연구≫ 22(2), (한국과학기술학회, 2022), 194-211쪽
p.s. 전주시는 2000년 ‘자연형 하천 조성사업'을 도입한 이후 오염이 심각했던 전주천을 생태적으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하천으로 돌려놓았다. 이는 각 지방단체에게 모범이 될 정도로 유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2022년 전주 시장이 된 우범기는 2023년 전주천과 삼천의 버드나무 260그루, 2024년 3월 남아있는 버드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 전주생태하천협의회, 전북환경운동연합, 시민들의 반대에도 우범기의 재선 업적 쌓기는 멈추지 않았다. 한 인물의 오판이 수많은 물고기와 곤충, 새와 식물의 터전이자 시민들의 보물을 앗아간 사례를 기사로 접하고 분노했으나 원활히 표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전주의 버드나무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좌절하기보다 이를 생산적이고 실체가 있는 형태로 되살려 손 닿는 거리의 자연에 보탬이 되고자 post-tree project를 떠올렸다. 같은 시기에 우연히 길위의인문학 지원사업을 접하고 개인 프로젝트를 단체활동으로 발전시켰다. 그 활동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미증유 자연》은 베어진 전주천 버드나무 그루터기서 자라난 꺾이지 않는 가지다.
작품을 설치했던 날처럼
서로서로 도와 철거를 마무리한 멤버들.
유정의 사려 깊은 편지, 선물을 받았다.
연말에도, 내년에도 또 볼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않을래요.
서로서로 돕고 의견을 쌓고 나누는 과정을
이렇게 즐겁고 편하게 또 할 수 있을까.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멤버들과 함께여서 감사했습니다.
모두의 후기는 또 다음 글에서 모아볼게요 : )
안뇽
'post-tree project; 동시대의 친구 나무 새롭게 사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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